은퇴를 앞두고 다시 읽은 『갈매기의 꿈』, 나만의 비행은 이제부터
젊은 날 생존과 성공의 우화로만 읽었던 고전을 정년과 은퇴를 앞두고 다시 펼쳐보며, 조직의 틀 안에서 잠시 접어두었던 꿈을 되살리고 인생 2막을 향해 나만의 주체적인 비행을 시작할 용기를 얻게 되었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4장 포함 완결판)을 읽고, 경남독서한마당을 계기로 60대의 시선에서 삶의 의미와 자유, 그리고 현실적 책임 사이의 균형을 성찰한 솔직한 독서 서평입니다.
먹이를 넘어, 비행 그 자체를 위해
젊은 날 읽었던 책을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다시 펼쳐보면, 같은 문장도 전혀 다르게 다가올 때가 있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이 그랬다.
나는 오랜 세월 일터를 지키며 먹고사는 문제와 현실적인 책임, 조직의 규칙에 맞추어 성실하게 살아왔다. 정년과 은퇴라는 삶의 큰 마디를 앞두고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니, 오롯이 나만의 자유와 삶의 의미를 찾아 열정을 바쳤던 때가 언제였나 싶어 아득해졌다. 그러던 중 경남독서한마당을 통해 4장이 새롭게 더해진 완결판을 다시 만나게 됐다.
지난번 《헛어른》을 읽으며 나잇값과 경력이라는 틀을 내려놓고 타인을 다정하게 경청하는 태도를 다짐했다면, 이번에는 『갈매기의 꿈』을 읽으며 타인의 시선이 정해준 무리에서 벗어나 나만의 온전한 가능성을 향해 날아오르는 비행의 의미를 깊이 헤아려보게 되었다.
젊은 시절에는 단순한 자기계발적 우화 정도로 생각했던 책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다시 읽는다고 무엇이 새로울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나단의 비행이 다르게 보였다.
조나단이 다른 갈매기들과 달랐던 것은 단순히 더 많은 먹이를 구하려는 데 관심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에게 비행은 생존을 위한 수단만이 아니라, 그 자체로 더 높고 완전한 가능성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나는 이 부분을 ‘무엇을 얻기 위해 사는가’보다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가’라는 질문으로 받아들였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완결판의 4장이었다. 조나단이 전했던 가르침이 시간이 지나면서 맹목적인 교리와 우상으로 굳어지고, 오히려 새로운 비행을 가로막는 틀이 되어버린다. 자유를 가르친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 자유를 제한하는 규칙이 남는 모습이 묘하게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이 대목에서 나는 자유라는 것도 잘못하면 또 하나의 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의 삶을 지나치게 우상화하거나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새로운 정답에 매달린다면, 그것 역시 스스로의 날갯짓을 멈추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직의 틀 안에서 접어두었던 날개
돌이켜보면 나에게도 조나단처럼 무리와 다른 방향을 바라보았던 순간들이 있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집단과 조직의 기준에 맞추다 보니 내 안의 가능성이나 꿈을 접어두어야 했던 때가 많았다. 남들과 다른 시도를 하다가 배척당하거나 오해를 받았던 기억도 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에는 내가 만든 안정된 틀과 관성에 스스로 안주하려는 모습도 있었다. 조나단이 무리와 떨어져 고독하게 비행을 연습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던 이유다.
책을 읽고 난 뒤 은퇴를 앞두고 느끼던 막연한 상실감에서 조금 벗어나 보기로 했다. 거창한 결심보다는 오랫동안 배우고 싶었던 글쓰기와 인문학 공부를 매일 정갈하게 이어가는 나만의 루틴을 만들었다. 일상에서도 익숙한 방식만 고집하지 않고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했다.
그렇게 생활의 작은 부분부터 바꾸자 반복되던 하루에 신선한 활력이 생겼다. 퇴직을 ‘사회적 마감’으로만 바라보던 마음도 조금씩 달라졌다. 오히려 이제부터 내가 온전히 나답게 날아볼 수 있는 시간이 시작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조나단의 선택을 모두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비행에 대한 극단적인 집착이나 무리와의 완전한 단절은 오랫동안 조직과 가정의 유대, 현실적인 책무를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온 내게는 다소 비현실적이고 이기적으로 느껴지는 면도 있다. 나만의 자유를 찾는 것과 내가 속한 사람들에 대한 책임, 따뜻한 연대감 사이에는 현실적인 균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만의 방향으로 정갈하게 날아가기
그래서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비행은 세상과 등을 돌리는 비행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쌓아온 삶의 경륜 위에 새로운 배움과 도전을 더하는 일에 가깝다. 나이에 맞춰 스스로 한계를 정하지 않고 배우며, 후배들과 사랑하는 이들에게 억압이 아닌 온기와 지혜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는 문장을 예전에는 성공에 관한 말처럼 받아들였던 것 같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읽힌다. 높이 나는 것이 남보다 앞서는 일이 아니라, 내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더 넓게 바라보는 일일 수도 있겠다.
긴 세월 성실하게 내 일터를 지키며 살아온 시간도 이제는 접어두고 싶은 과거가 아니다. 그것 역시 지금의 내가 날 수 있도록 날개를 다듬어온 과정이었다고 받아들이게 됐다.
앞으로의 비행이 얼마나 높고 멀리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남은 날들만큼은 타성이 정해준 방향으로 흘러가기보다, 내가 선택한 방향으로 정갈하고 우아하게 날아가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