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어른》을 읽고, 수십 년 경력보다 중요한 어른의 태도
어느덧 직장에서 선배의 자리에 서서 나잇값과 연차의 무게를 느끼던 중, 진정한 어른의 품격은 지나온 세월의 길이가 아니라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겸손해지는 태도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김용섭의 《헛어른》을 읽고, 퇴직을 앞둔 시점에서 지나온 삶의 자부심을 지키면서도 권위를 내려놓고 다정한 어른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다룬 솔직한 독서 서평입니다.
나이가 아니라 태도가 어른을 만든다
수십 년 가까이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어른’의 자리에 서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연차가 쌓이고 나이가 들면서 후배들에게 조언하는 일도 많아졌다. 그런데 문득 이런 질문이 생겼다. 나는 나이를 먹은 만큼 정말 어른이 된 것일까?
지난번 《꽃이 노래하는 계절》을 읽으며 조급했던 삶의 템포를 계절의 속도에 맞추는 법을 배웠다면, 이번에는 《헛어른》을 통해 나이와 경력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후배와 타인에게 마음을 열어두는 어른의 다정한 태도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헛어른》이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는 조금 경계가 됐다. 오랜 세월 직장과 가정에서 제 몫을 다하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헛어른’이라는 말을 던지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 역시 수십 년이라는 긴 시간을 성실히 살아왔으니 책을 읽으며 마음 한구석이 찔리거나 씁쓸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책이 던지는 질문은 남을 향한 비판보다 나 자신에게 더 가까이 와닿았다.
내게 가장 오래 남은 내용은 나이가 많고 경력이 오래되었고 해서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었다. 오히려 나잇값을 내세워 대접받으려 하거나 자신의 경험만 옳다고 여기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돌이켜보면 나도 직장에서 오랜 세월 선배로 지내면서 비슷한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다. 내가 먼저 겪어봤다는 이유로 내 방식이 더 맞다고 생각하고, 후배의 말을 끝까지 듣기보다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내 생각을 먼저 얹으려 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한편으로는 책의 시선에 조금 아쉬움도 있었다. 장년층의 고집이나 꼰대스러움을 이야기하다 보니 치열한 세월을 버티며 가족과 조직을 지탱해온 사람들의 노고까지 가볍게 평가되는 듯한 느낌을 받은 부분도 있었다. 헛어른에 대한 자성은 필요하지만, 수십 년 동안 성실하게 살아온 삶에 대한 인정과 자부심까지 내려놓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경력은 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다만 그것을 다른 사람 위에 세우는 방식으로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쪽에 더 마음이 간다.
입을 닫으니 관계가 달라졌다
책을 읽으면서 실제로 해본 것은 아주 단순했다. 일상과 일터에서 ‘귀는 열고 입은 닫는 다정한 연습’을 해보는 것이었다. 후배나 가족과 이야기할 때 내 경험을 앞세워 가르치려 하기보다 그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려고 했다. 내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인정하려 했다.
크게 특별한 행동은 아니었다. 하지만 권위와 ‘나잇값’을 조금 내려놓고 나니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전보다 가볍고 부드러워졌다. 후배들이 한층 편안하게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것도 느꼈다.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내 마음이었다. 나이 든 사람답게 의연해야 하고, 완벽한 어른이어야 한다는 부담이 조금 사라졌다. 부족한 것을 인정한다고 해서 내 삶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마음이 한결 고요해지고 자유로워졌다.
어쩌면 어른의 품격은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은퇴 후에는 어떤 어른으로 남을까
《헛어른》을 읽고 나서 지나온 수십 년의 세월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졌다.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경륜을 굳이 부정할 이유는 없다. 다만 그 세월이 나를 고집스럽게 만드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다.
앞으로 맞이할 삶의 다음 여정에서는 나이라는 숫자에 기대지 않고 계속 배우며 마음을 열어두고 싶다. 후배나 이웃에게 내가 아는 것을 일방적으로 주입하기보다 필요할 때 온기를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직 내가 완성된 어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앞으로도 내 경험을 앞세우고 싶은 순간이 생길 것이다. 그래서 ‘진짜 어른’이 되는 일은 한 번의 결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나를 돌아보는 과정에 가까울 것 같다.
지나온 성실한 삶의 발자취 위에 이제는 겸손과 경청을 더해보고 싶다. 나이만 먹은 헛어른이 아니라, 마음의 결이 조금 더 깊고 따뜻한 사람. 그것이 내가 은퇴 이후에도 계속 가꾸어가고 싶은 어른의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