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계절도 꽃이었음을 — 《꽃이 노래하는 계절》을 읽고

성과와 빽빽한 일정표에 쫓겨 봄이 와도 꽃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날들을 뒤로하고, 정년과 은퇴를 앞둔 시점에서 지나온 모든 견딤과 수고의 시간 역시 이미 아름답게 피어난 내 삶의 소중한 계절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꽃이 노래하는 계절을 읽고, 오랜 세월 직장 생활을 마무리해 가는 시점에서 내 삶의 템포를 계절의 속도에 맞추며 지나온 시간에 감사와 자비를 건네는 솔직한 독서 서평입니다.

책 《꽃이 노래하는 계절》 표지
꽃이 노래하는 계절표지


꽃이 피는 때는 저마다 다르다

오랜 세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서류와 성과, 빽빽한 일정표 속에서 살아왔다. 봄이 와도 꽃이 피었는지 제대로 바라볼 겨를 없이 출근하고 퇴근하기를 반복한 날이 많았다. 그러다 정년과 은퇴를 앞둔 시점에 서니 문득 차가운 업무용 문장보다 내 마음을 다정하게 건드리는 시와 문장이 그리워졌다. 그렇게 꽃이 노래하는 계절을 펼쳤다.

지난번 데미안을 다시 읽으며 직장이라는 알(울타리)을 깨고 나와 내면의 진짜 목소리를 찾는 연습을 시작했다면, 이번에는 꽃이 노래하는 계절을 읽으며 조급하게 성과를 내야 했던 삶의 템포를 자연의 속도에 맞추고 지나온 삶의 궤적 전체를 따뜻하게 감싸 안는 여유를 배우게 되었다.

문학팀이 여러 작품을 엮은 책이라 처음에는 조금 가볍게 생각했다. 봄날의 꽃이나 계절을 예찬하는 감상적인 글들이 모인 책 정도가 아닐까 싶었다. 치열한 직장 생활을 오래 해온 내게는 다소 아기자기한 감성 에세이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읽다 보니 마음에 오래 남는 문장이 있었다. 꽃은 저마다 자기만의 계절을 견뎌낸 뒤 피어난다는 생각이었다. 억지로 봄을 앞당길 수 없듯 사람의 삶에도 각자의 때가 있고, 아름답게 피어나는 순서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이 내용을 단순히 늦어도 괜찮다는 위로로만 읽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언젠가는 지나가겠지 생각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실제로 수십 년의 세월 동안 계절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바뀌었다. 아무리 추운 겨울도 지나갔고, 때가 되면 다시 꽃이 피었다. 그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바쁘게 지나쳤을 뿐, 계절의 순환은 늘 내 곁에서 묵묵히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이 듦과 은퇴도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젊음이 지나가고 삶의 화려함이 사라지는 저물어가는 계절이라고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과 관계, 견뎌온 시간들이 이제는 다른 형태의 꽃을 피울 수도 있는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책 속의 화사하고 낭만적인 문장들을 모두 현실에 그대로 대입하기는 어려웠다. 성과와 책임을 매일 감당해야 하는 직장인의 현실에서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긋하게 바라보는 일이 때로는 유토피아적인 여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름다운 감성을 누리는 것과 현실에서 맡은 자리를 지키는 신중함은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출퇴근길에 계절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책을 읽은 뒤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거창한 행동이 아니었다. 매일 오가는 길에서 주변을 조금 더 바라보는 일이었다.

예전에는 출퇴근길도 다음 일정과 해야 할 일을 생각하는 시간에 가까웠다. 이제는 나무의 색이 달라졌는지, 꽃이 피기 시작했는지, 계절의 기운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의식적으로 살펴보았다. 특별한 일이 생긴 것은 아니지만, 늘 앞만 보고 걷던 시선이 조금씩 주변으로 옮겨갔다.

아침에는 마음에 와닿는 시 구절이나 고운 문장을 나만의 노트에 정갈하게 필사했다. 바쁜 업무를 해야 한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잠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생겼다.

그 결과인지 늘 단단하게 굳어 있던 마음의 결이 한층 부드러워졌다. 직장에서 마지막 순간들을 조급함이나 허탈함으로만 보내지 않고, 지나온 시간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느낄 여유가 생겼다. 동료와 후배들에게 말을 건넬 때도 조금은 더 다정하고 따뜻한 언어를 선택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책이 내 삶을 바꿔놓았다기보다, 이미 지나온 시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이제는 내 계절의 속도로 살아보고 싶다

꽃이 노래하는 계절을 읽고 나서 은퇴라는 말도 전과 조금 다르게 들린다. 지금까지의 삶이 끝나는 시간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쌓아온 깊이가 다른 방식으로 피어나는 계절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돌이켜보면 내 삶의 계절마다 피어난 순간들이 있었다. 기쁜 날만 꽃이었던 것은 아니다. 힘들게 견뎠던 시간도, 책임을 다하기 위해 애썼던 날들도 지금의 나를 만든 하나의 계절이었다. 그 모든 시간이 모여 내 안에 하나의 노래가 되어 흐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은퇴 후의 삶을 모두 살아본 것은 아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계획을 이미 이루어진 일처럼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때가 오면 자연의 속도에 맞춰 내 삶의 템포도 조금 늦추고 싶다. 계절이 주는 작은 선물을 놓치지 않고, 그동안 쌓아온 삶의 경륜에 문학적 감수성을 더해 글을 쓰고 사람들과 나누는 삶도 살아보고 싶다.

오랜 세월 성실하게 일터를 지켜온 나 자신에게도 이제는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 꽃은 정해진 계절에 피고, 노래도 자기만의 때가 있는 것처럼 내 삶에도 아직 피어나지 않은 계절이 있을 것이다.

아마 앞으로의 삶에서는 그 꽃이 언제 피는지를 조급하게 기다리기보다, 계절이 오는 소리를 조금 더 천천히 들어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