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을 60대에 다시 읽다, 직장이라는 알을 깨고 나오는 연습
환갑을 넘겨 다시 펼친 고전 속에서 직장이라는 울타리와 신분표를 내려놓은 뒤의 나를 마주하며, 오랜 세월 지켜온 조직의 삶을 넘어 진짜 내 안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연습을 시작하게 되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다시 읽고, 퇴직을 앞둔 직장인이 '직장'이라는 기존의 세계(알)를 깨고 나와 삶의 다음 장을 주체적으로 준비하는 솔직한 독서 서평입니다.
청년 시절 읽었던 고전 가운데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 몇 권 있었다. 《데미안》도 그중 하나였다. 당시에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청소년의 방황과 성장에 관한 소설 정도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환갑을 넘긴 지금 다시 펼치기 전까지도 ‘이 나이에 읽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지난번 《학폭위 열리는 날》을 읽으며 타인의 행동 뒤에 숨은 마음을 헤아리는 다정한 경청을 다짐했다면, 이번에는 《데미안》을 통해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진솔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수십 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고 정년과 은퇴를 앞둔 시점에서 읽으니 전혀 다른 질문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동안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맡은 책임을 다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직장인의 본분을 지키며 비교적 정돈된 길을 걸어왔다. 그런데 문득 이런 질문 앞에서 머뭇거리게 됐다.
“회사라는 울타리와 신분표를 떼어내고 나면 나는 누구인가?”
다시 들여다본 내면의 목소리
싱클레어의 고뇌를 따라가면서 가장 오래 머문 부분은 ‘남들이 정해준 삶’과 ‘내 안에서 솟아나는 삶’ 사이의 갈등이었다. 책은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고,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는 방향을 보여준다.
내게는 이것이 거창한 자아 탐구라기보다 아주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왔다. 오랜 시간 수없이 많은 일을 완수하고 인정받으며 살아왔지만, 돌이켜보면 세상의 기준과 타인의 기대에 맞추느라 내 마음의 목소리를 눌러야 했던 순간도 적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을 해내는 데는 익숙했지만,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일에는 상대적으로 인색했던 셈이다.
책을 읽으며 새삼 알게 된 것은 자아를 찾아가는 일이 젊은 시절에 끝나는 과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지금처럼 삶의 한 단계가 끝나가는 시점에 더 진지하게 물어야 할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알은 세계이다”라는 문장 앞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역시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라는 구절이었다. 내게 이 알은 자연스럽게 ‘직장’으로 읽혔다.
직장은 오랫동안 나를 보호해준 세계였다. 그 안에서 역할과 책임이 분명했고, 내가 누구인지 설명해주는 직함도 있었다. 그래서 그 울타리를 벗어난다는 생각에는 불안과 허탈함이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은퇴를 단순히 직장에서 물러나는 일로만 생각하면 상실감이 커질 것 같다. 지금은 오히려 기존의 세계에서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지나 온 시간 동안 쌓아온 경험까지 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바탕으로 ‘나라는 사람’을 다시 구성하는 일에 가깝다.
물론 《데미안》의 신비주의적인 요소나 싱클레어가 겪는 극단적인 내적 고뇌는 내 현실과 거리가 있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조직에서 책임과 질서를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온 내게 내면의 투쟁만으로 삶을 설명하는 방식은 다소 모호했다. 현실에서는 나 자신을 찾는 일 못지않게 가족과 사회에 대한 책임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아침의 차 한 잔, 그리고 다가오는 은퇴 이후의 삶
그래도 이번에는 책을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 가지를 실제 생활에 옮겨보았다. 타인의 시선에서 잠시 벗어나 내 마음과 대화하는 시간을 일상에 넣어보기로 했다.
매일 아침 혼자 정갈하게 차 한 잔을 마시면서 내 마음의 상태를 솔직하게 적어보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은퇴 후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할 때도 남들이 보기 좋은 선택이나 화려한 결과보다 ‘내가 진짜 원하는 일과 배움인가’를 먼저 묻는 연습을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기존의 안정된 울타리를 벗어나는 데서 느끼던 불안과 허탈함이 눈에 띄게 줄었다. 대신 마음 한편에 평온함과 주체성이 조금씩 자리 잡았다. 은퇴를 ‘사회적 퇴장’으로만 바라볼 때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앞으로의 은퇴 이후의 삶에서도 이 기준을 이어가고 싶다. 세상이 정해놓은 나이나 성공의 잣대에 맞추기보다 내 안에서 솟아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삶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지난 세월 동안 성실하게 걸어온 삶의 궤적에는 분명한 자부심이 있다.
어쩌면 그 시간들이야말로 이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일 것이다. 알을 깨는 일은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삶을 품은 채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내 속에서 스스로 솟아나오려는 것, 나는 오직 그것만을 살아가려 했다.’
다시 읽은 《데미안》은 내게 젊은 날의 방황을 떠올리게 한 책이 아니라, 이제부터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지 묻게 한 책으로 남았다. 아직 답을 모두 찾은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는 그 질문을 피하지 않고, 내 안의 진짜 나를 만나러 가는 걸음을 시작해보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