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앞두고 다시 펼친 책, 청춘은 나이가 아니었다 — 《책 읽는 청춘에게》를 읽고
수십 년간 일터를 성실히 지키며 삶의 전환점을 앞둔 지금, 나이에 상관없이 배움을 향해 기꺼이 마음을 열고 책을 펼치는 순수한 호기심이야말로 인생의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가장 진정한 청춘의 태도임을 깨닫게 되었다.
우석훈, 노희경 외 공저 《책 읽는 청춘에게》를 읽고, 은퇴를 앞둔 직장인의 시선으로 지나온 세월을 자애롭게 다독이며 책과 함께 깊어지는 삶을 다짐하는 솔직한 독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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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책 《책 읽는 청춘에게》 표지 |
책이 말하는 ‘독서’가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오랜 세월 일터를 지키며 하루하루 맡은 일을 감당하다 보니 어느덧 정년과 은퇴라는 삶의 큰 전환점을 앞두게 되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젊은 날의 고뇌와 방황,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기 위해 애썼던 순간들이 아득하게 떠오른다.
지난번 《자존감의 법칙》을 읽으며 외부의 인정이나 평가에서 벗어나 오랜 시간 일터를 지켜온 나 자신을 다정하게 가꾸고 인정해 주는 자존감을 배웠다면, 이번에는 전자책을 이용해서 《책 읽는 청춘에게》를 읽으면서 나의 예전 젊은 시절과 비교해 보면서 읽어보았다.
우석훈, 노희경, 서진규, 홍세화, 김혜남이 각자의 삶에서 만난 책과 그 책이 남긴 생각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처음에는 조금 망설였다. 제목부터 젊은 세대를 위한 책처럼 느껴졌고, 오랜 세월 현장에서 여러 경험을 겪은 내가 다시 읽는다고 해서 얼마나 새로운 것이 있을까 싶었다. 자칫 젊은 사람들에게 독서를 권하는 상투적인 에세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읽으면서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책이 단순히 지식을 쌓거나 성공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책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주고, 삶이 고단할 때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이 각자의 인생에서 한 권의 책을 만나고, 그 안에서 삶의 방향이나 위안을 발견했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그 대목에서 나는 저자들의 경험보다 오히려 내 기억을 먼저 떠올렸다.
젊은 시절 직장생활을 하면서 앞으로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생각이 나를 사로잡을 때가 있었다.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리다가 집에 돌아오면 몸은 지쳐서 쓰러질법도 한데 이상하게 마음은 더욱 복잡하기만 했다. 그때 우연히 책장에서 꺼내 읽었던 책이 있었다. 지금은 책의 내용보다도 늦은 밤 혼자 책장을 넘기던 그때의 기억이 더 선명하다. 책을 읽고 당장 내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너무 한쪽 방향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 이후부터 힘든 일이 있을 때 바로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한 번쯤 머리를 식힐 겸, 책을 펼쳐 생각을 정리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직장생활이 바빠지면서 책은 내 생활에서 밀려났다. 퇴근하면 책 읽기보다는 잠깐 쉬는 것이 먼저였다. 주말에도 업무 해결하느라 책 읽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책이 사람을 당장 변화시키는 특별한 도구라기보다는, 흔들리는 동안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조용한 공간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책의 모든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인 것은 아니다. 저자들이 청춘의 경험과 독서가 주는 의미를 이야기하다 보니, 오늘날 치열한 생존 경쟁을 견뎌야 하는 젊은 세대에게는 다소 낭만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 역시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책을 읽으며 나를 돌아볼 여유보다 당장 맡은 일을 해내는 것이 더 중요했었기 때문이다. 평생 조직 안에서 책임을 짊어지고 살아온 장년층에게도 마찬가지다. 책을 통한 통찰은 분명 중요하지만, 현실을 정직하게 견뎌낸 생활인의 노고 역시 그에 못지않게 가치 있다. 책이 삶을 대신해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은퇴를 앞두고 다시 책상에 앉은 이유
예전에는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하루가 끝나면 늘 내일로 미루곤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 않고 하루에 일정한 시간을 정해 책상에 앉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 다른 일을 시작하기 전에 책을 몇 쪽이라도 읽고, 마음에 남는 문장은 노트에 적었다. 처음에는 며칠이나 계속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많은 양을 읽으려고 하지 않으니 부담이 적었다. 어느 날에는 몇 쪽밖에 읽지 못했지만 그날 읽은 한 문장이 하루 종일 머릿속에 남아 있기도 했다. 그때부터 독서는 많이 읽는 일이 아니라 내 생각을 잠시 멈추어 세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량을 늘리는 것이 목표는 아니었다. 한 문장을 읽더라도 지금의 내 삶과 연결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더 중요했다. 예전에는 퇴직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그 이후에는 무엇을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요즘은 ‘배우고 싶은 것은 무엇이지?’라는 질문을 해 본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든 답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배울 것이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을 채워주었다. 새로운 것을 알고 싶다는 지적 호기심도 다시 생겼다.
예전에는 책을 읽으면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동안 책을 펼쳐놓고도 ‘이걸 읽어서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부터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조금은 달라졌다. 당장 써먹을 내용이 아니어도 한 문장을 읽다가 내 지난 시간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은 일터의 시간을 바라보는 마음도, 앞으로 맞이할 삶을 생각하는 시선도 전보다 조금 자유롭고 의연해졌다.
책을 읽는 사람에게 청춘은 나이가 아니다
책을 읽는 사람에게 청춘은 특정한 나이로만 정해지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 얻은 삶의 지혜도 있지만 책을 통해 새로운 지혜를 받아들아들이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음을 인정하며 다시 배우려는 마음. 나는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청춘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은퇴를 맞더라도 이 마음만은 놓치고 싶지 않다. 수십 년 동안 살아오며 쌓은 경험에 책을 통한 배움을 계속 더해가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후배들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게 된다면, 억압적인 조언보다는 내가 살아오며 배운 것과 책에서 얻은 따뜻한 통찰을 넓은 품으로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랜 세월 성실하게 삶을 일궈온 나 자신에게도 이제는 조금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리고 다가올 삶의 새로운 장에서는 책과 함께 천천히 깊어지고, 정갈하게 피어나는 기쁨을 가꾸어보고 싶다. 은퇴 후에도 아침마다 책을 펼치는 습관만큼은 계속 가져가고 싶다. 앞으로 몇 권을 읽을지는 정말 잘 모르겠다. 다만 지금처럼 책을 읽다가 마음에 다가오는 문장을 만나면 잠시 내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