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직장생활 끝에 다시 생각한 시간의 가치, 《시간을 파는 상점》 (카이로스의 시간, 시간의 여유, 인생 2막)
《시간을 파는 상점》을 읽고, 35년 차 직장인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 카이로스의 의미와 10분의 여유를 실천하며 깨달은 인생 2막의 시간 관념을 담은 솔직한 후기입니다.
35년 가까이 직장 생활을 하면서 늘 시간에 쫓겨 살았다. “시간이 없다”,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지냈고, 해야 할 일을 하나씩 처리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지나 있었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이제 은퇴를 눈앞에 두고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빠르게 지나간 시간 속에서 나는 무엇을 놓치며 살아온 것일까.
《시간을 파는 상점》은 청소년 권장도서로 알려진 소설이라 처음에는 조금 가볍게 생각했다. 35년 동안 직장생활을 한 내게는 성장소설 특유의 단순한 이야기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예상과 달랐다.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였지만, 오히려 내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하는 질문이 많았다.
같은 하루인데 왜 어떤 날은 다르게 기억될까 (카이로스의 시간)
가장 오래 남은 것은 물리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인 크로노스와, 내가 어떻게 경험하고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카이로스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생각해보면 내게 시간은 오랫동안 ‘처리해야 하는 것’에 가까웠다. 업무를 끝내고, 다음 일을 준비하고, 또 하루를 보내는 식이었다. 시간을 잘 쓴다는 것도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느냐로 판단했던 것 같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시간의 양보다 그 안에 무엇을 담았는지가 더 중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는 시간, 가족에게 따뜻한 안부를 건네는 시간도 그냥 흘러가는 몇 분이 아니라 의미를 가진 시간이 될 수 있었다.
35년 동안 시간을 많이 썼지만, 정작 시간을 어떻게 살아냈는지를 돌아볼 여유는 부족했다. 그래서 이 책의 이야기가 청소년 소설이라는 사실보다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라는 질문이 더 크게 다가왔다.
10분의 여유가 하루의 표정을 바꾸었다 (시간의 여유)
책을 읽은 뒤 거창한 변화를 시도하지는 않았다. 대신 매일 흐르는 시간을 조금 다르게 써보기로 했다. 출퇴근길이나 퇴근 후 바쁜 일상에서 10분 정도라도 나만의 시간을 온전히 누리고, 오랜 동료와 가족들에게 따뜻한 안부와 감사의 말을 건네는 작은 실천을 해보았다.
시간으로 따지면 아주 짧은 변화였다. 그런데 하루를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졌다. 늘 똑같고 조급하게 느껴졌던 하루가 조금 느긋하게 느껴졌고, 사람을 대할 때도 다음 일을 생각하며 서두르기보다 지금의 대화에 조금 더 머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남은 직장생활을 마무리하는 마음이 달라졌다. 빨리 지나가 버리기를 기다리기보다 그동안 함께 일해온 사람들과 지금의 시간을 감사하게 바라보게 됐다. 같은 24시간인데 내가 어떤 마음으로 보내느냐에 따라 하루의 결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느꼈다.
물론 책 속의 이야기가 현실의 모든 문제를 그대로 설명해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청소년 주인공들이 사건을 해결하고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은 때로 순진하고 극적으로 느껴졌다. 35년 동안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실제 인간관계는 그렇게 간단하게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 사이의 감정과 이해관계에는 책보다 훨씬 복잡한 시간이 얽혀 있다.
은퇴 후에는 시간을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인생 2막)
이 책을 읽고 나이가 든다는 것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됐다. 예전에는 나이가 들수록 남은 시간이 줄어든다는 사실이 먼저 떠올랐다. 지금은 지나온 시간이 쌓였기 때문에 오히려 시간의 가치를 알아보는 눈도 생겼다고 생각한다.
35년 직장생활은 단순히 지나간 세월이 아니다. 그 안에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부딪히며 얻은 경험과 지혜가 들어 있다. 은퇴 후에는 그 시간을 나만을 위해 소비하기보다 다른 사람에게 나누는 데도 써보고 싶다.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누군가에게 경험에서 얻은 조언을 건네는 일, 소외된 이웃에게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주는 일도 생각해보고 있다. 아직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나만의 작은 ‘시간을 나누는 상점’을 만들어보고 싶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다. 하지만 그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채울지는 각자의 몫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35년의 시간에 감사하면서, 이제부터는 조금 천천히 주변을 바라보고 싶다. 은퇴는 시간이 끝나는 시점이 아니라, 내게 남은 시간을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다시 선택하는 시작일 수도 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