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위 열리는 날》, 아이들의 마음을 먼저 듣는 어른이 되기로 했다
학폭위라는 뉴스 속 차가운 단어 뒤에 숨은 아이들의 아픈 마음을 동화를 통해 들여다보며, 수십 년 사회생활 동안 원칙을 우선시했던 자신을 돌아보고 행동 뒤의 마음을 헤아리는 다정한 경청의 자세를 배우게 되었다.
김문주 글, 박세영 그림의 《학폭위 열리는 날》(예림당)을 읽고, 퇴직을 앞둔 직장인이 원칙과 다정함의 균형을 이루며 사람의 마음을 먼저 듣는 인생 2막의 태도를 다짐하는 솔직한 독서 서평입니다.
지난번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것들과 거리를 두는 대화법》을 통해 나를 소모시키는 소음으로부터 마음의 여백을 지키는 법을 배웠다면, 이번에는 《학폭위 열리는 날》을 읽으며 그 여백 속에 타인의 아픈 마음을 담아내는 다정한 경청의 의미를 깊이 고찰해 보게 되었다.
그래서 김문주 글, 박세영 그림의 《학폭위 열리는 날》을 펼쳤다. 예림당에서 나온 어린이 동화라는 점 때문에 처음에는 조금 아동식이고, 학교폭력의 위험성을 알려주는 계도적인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나이에 읽기에는 다소 진부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내가 오래 붙잡게 된 것은 학폭위라는 제도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서 있는 아이들의 마음이었다.
학폭위라는 이름보다 먼저 보인 것
책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서슬 퍼런 절차와 처벌보다 아이들이 서로의 상처와 오해를 들여다보고 마음을 터놓는 과정이었다. 잘못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상대가 왜 아팠는지를 알아가는 모습이 마음에 남았다.
나는 이 부분을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사람의 마음을 회복하는 것’은 조금 다른 일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어른의 입장에서는 누가 잘못했는지 따지고 적절한 절차를 밟는 일이 먼저일 수 있다. 물론 그것도 필요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정작 당사자인 아이의 마음이 빠져버린다면 문제의 한쪽만 바라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오랜 사회생활을 돌아보면 어른들의 갈등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로의 속마음을 충분히 들여다보지 않은 채 절차나 감정적인 대립으로만 치달았던 순간에는 상처가 오래 남았다. 그래서 책 속 아이들의 이야기가 어린이들만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행동 뒤에 있는 마음을 물어보기
책을 읽고 난 뒤 내가 실제 생활에서 바꿔본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주변 사람이나 어린 후배, 아이들을 바라볼 때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 보고 판단하지 않으려고 했다.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행동이 보였을 때 바로 지적하기보다 “어떤 마음이었니?”, “어떤 속상함이 있었니?” 하고 물어보고 끝까지 들어주려고 했다. 잘잘못을 따지는 말보다 먼저 마음의 사정을 들어보는 쪽으로 대화의 순서를 바꿔본 것이다.
그렇게 상대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주자 경직되어 있던 관계의 긴장감이 단숨에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긴 직장 생활을 하며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워왔지만, 그 단단함에 다정하게 감싸 안는 시선이 더해지니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도 여유가 생겼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조금 더 편안하고 든든한 쉼터 같은 어른으로 다가갈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다만 이 책의 따뜻한 결말이 현실의 모든 학교폭력 문제를 설명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실제 학교폭력은 훨씬 복잡하고 심각한 경우가 있으며, 때로는 법적 절차와 명확한 책임도 반드시 필요하다. 따뜻한 화해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듯한 부분에는 현실적인 거리감도 느꼈다. 마음을 듣는 일과 원칙을 세우는 일은 어느 하나를 포기할 문제가 아니라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은퇴 후에는 어떤 어른으로 남을까
책을 읽고 나서 아이들의 갈등은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더 선명해졌다. 어른들이 어떤 울타리를 만들어주고, 얼마나 진심으로 들어주느냐에 따라 아이들이 상처를 견디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정년과 은퇴를 앞둔 지금, 나는 지나온 시간 동안 쌓아온 경험을 무엇에 쓸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앞으로의 인생 후반전에서는 마음의 상처나 갈등을 겪는 아이들과 청년들에게 따뜻한 들어줌과 현실적인 조언을 건네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 아직 내가 해보지 않은 역할이기에 구체적인 결과를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상대를 쉽게 단정 짓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어른의 품격만큼은 놓치지 않으려 한다.
학폭위라는 차가운 이름 뒤에도 아이들의 아픈 마음이 숨어 있다. 이 책은 내게 학교폭력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많이 알려준 책이라기보다, 사람을 대할 때 내가 무엇을 먼저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돌아보게 한 책이었다.
원칙은 단단하게 지키되 사람의 마음은 따뜻하게 살피는 것. 35년의 삶을 지나 이제 인생 2막을 준비하는 내가 가져가고 싶은 태도는 아마 그 두 가지의 균형에 가까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