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앞두고 다시 읽은 『갈매기의 꿈』, 자유와 책임을 생각하다
젊은 날에는 생존과 성공의 이야기로 읽었던 『갈매기의 꿈』을 정년과 은퇴를 앞두고 다시 펼쳤다. 이번에는 조직의 기준에 맞춰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며, 자유와 현실적 책임 사이에서 앞으로 어떤 삶을 선택할지 생각하게 되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주어진 일을 잘 해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런데 은퇴가 가까워지면서 일을 잘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은 맡은 일을 잘 마무리하고 주어진 책임을 다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제는 그 책임을 다한 뒤 내게 남는 시간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도 생각해야 할 때가 되었다.
먹이를 넘어, 비행 그 자체를 위해
젊은 날 읽었던 책을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다시 펼쳐보면, 같은 이야기에서도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때가 있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이 그랬다.
나는 오랜 세월 일터를 지키며 생계와 현실적인 책임을 우선하고, 조직의 규칙에 맞춰 성실하게 살아왔다. 정년과 은퇴를 앞두고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니,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썼는지 선뜻 답하기 어려웠다. 그런 생각이 들 무렵 『갈매기의 꿈』을 다시 읽게 되었다
지난번 『헛어른』을 읽으며 나잇값과 경력이라는 기준에서 벗어나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태도를 생각했다. 그 책을 읽으며 경력이나 나이가 쌓였다는 이유만으로 내 생각이 늘 옳다고 여겨서는 안 되겠다고 느꼈다. 오랜 경험을 갖는 것과 다른 사람의 말을 열린 마음으로 듣는 것은 별개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갈매기의 꿈』을 통해 타인의 기준에 맞추는 삶에서 벗어나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을 고민하게 됐다.
젊은 시절에는 단순한 자기계발 우화 정도로 생각했던 책이었다. 그래서 지금 다시 읽는다고 무엇이 새로울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나단의 비행이 다르게 보였다.
조나단이 다른 갈매기들과 달랐던 것은 단순히 더 많은 먹이를 구하는 데 관심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에게 비행은 생존을 위한 수단만이 아니라, 더 높은 가능성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나는 이 부분을 ‘무엇을 얻기 위해 사는가’보다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가’라는 질문으로 받아들였다. 내게 그 가능성은 남들보다 더 큰 성과를 이루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숙한 생각을 다시 살펴보며,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을 조금씩 알아 가는 일도 그 가능성에 포함된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완결판의 4장이었다. 조나단이 전했던 가르침은 시간이 지나면서 맹목적인 교리와 우상으로 굳어지고, 오히려 새로운 비행을 가로막는 틀이 되어버린다. 자유를 가르친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 자유를 제한하는 규칙이 남는 모습이 묘하게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나 역시 오랫동안 성실하게 일하고 맡은 책임을 다하는 것이 바람직한 삶의 중요한 기준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 기준은 내 삶을 지탱해 주었지만, 때로는 그 밖의 가능성을 생각할 여유를 줄였을지도 모른다.
이 대목에서 나는 자유를 추구하는 일도 또 하나의 틀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삶을 지나치게 이상화하거나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새로운 정답에 매달리면, 결국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좁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직의 틀 안에서 접어두었던 날개
돌이켜보면 직장생활을 하면서 조직의 기준에 맞추느라 내가 원하는 방향을 뒤로 미룬 때가 있었다. 남들과 다른 시도를 하다가 오해를 받았던 기억도 있다.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에 대해 기존과 다른 의견을 낸 적이 있다. 나는 더 나은 방법을 찾으려는 의도였지만, 당시에는 그 뜻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새로운 시도에는 아이디어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이해시키는 과정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에는 내가 만든 안정된 틀과 관성에 스스로 안주하려는 모습도 있었다. 처음에는 기존의 방식이 답답하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 역시 익숙한 방법을 따르는 편이 편하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변화를 가로막는 것은 조직의 규칙만이 아니라, 불편함을 피하려는 내 마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은 뒤 은퇴를 앞두고 느끼던 막연한 상실감에서 조금 벗어나 보기로 했다. 거창한 결심보다는 오랫동안 배우고 싶었던 글쓰기와 인문학 공부를 일상의 루틴으로 만들어 가기로 했다. 익숙한 방식만 반복하기보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생각하는 시간을 늘리고 싶었다.
아직 일정한 공부 습관이 완전히 자리 잡은 것은 아니다. 다만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일상에 조금씩 늘리면서, 은퇴 후에도 배우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
물론 조나단의 선택을 모두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비행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나 무리와의 완전한 단절은 오랫동안 조직과 가정의 유대, 현실적인 책무를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온 내게 다소 비현실적이고 이기적으로 느껴지는 면도 있다. 나만의 자유를 찾는 것과 내가 속한 사람들에 대한 책임, 따뜻한 연대감 사이에는 현실적인 균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만의 방향으로 정갈하게 날아가기
내가 앞으로 추구하고 싶은 삶은 세상과 등을 돌리는 삶이 아니다. 지금까지 쌓아 온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배우고, 나이에 맞춰 스스로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는 삶이다. 후배들과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정답을 알려 주려 하기보다, 경험에서 얻은 생각을 나누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는 문장을 예전에는 성공에 관한 말처럼 받아들였던 것 같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읽힌다. 높이 나는 것이 남보다 앞서는 일이 아니라, 내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더 넓게 바라보는 일일 수도 있겠다. 예전에는 일을 잘 해내고 맡은 역할에서 성과를 내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성과뿐 아니라 무엇을 배우며 살아가는지, 내 선택에 얼마나 충실한지도 삶의 방향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느낀다.
긴 세월 성실하게 내 일터를 지키며 살아온 시간도 이제는 접어두고 싶은 과거가 아니다. 그것 역시 지금의 내가 날 수 있도록 날개를 다듬어온 과정이었다고 받아들이게 됐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남은 시간만큼은 익숙한 관성에 맡기기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배우고 실천하며 살아가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