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정년은 없다》를 읽고, 회사 밖에서도 내 경험은 쓰일 수 있을까
35년 동안 매일 아침 출근하던 일상이 당연했기에, 어느덧 정년이라는 단어가 현실로 다가왔을 때 회사라는 울타리 밖에서의 내 존재 가치가 문득 두려워졌다.
《이제 정년은 없다》를 읽고, 직장인이 회사의 간판을 내려놓은 뒤에도 자신의 경험을 삶의 주도권과 제2의 평생 직업 자산으로 연결해가는 솔직한 독서 서평입니다.
정년이 내 일의 끝을 의미할까
35년 가까이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정년’이라는 말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게 됐다. 평생 성실하게 일터를 지켜왔고 직장인이라는 정체성도 내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다. 그래서 정년이 가까워질수록 직장을 떠나는 것보다 그 이후의 내가 더 궁금했다.
직장을 그만두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회사라는 간판을 떼고 나서도 내가 세상에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이런 질문 앞에서는 자신 있게 답하기가 어려웠다. 35년 동안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쌓은 경험이 회사를 벗어나는 순간에는 유효기간이 끝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이제 정년은 없다》는 바로 그 지점에서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책에서는 정년을 사회가 정해놓은 행정적인 마침표로 볼 뿐, 개인의 일과 삶까지 끝내는 기준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이 내용을 ‘계속 직장에 다녀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직장을 떠난 뒤에도 내가 가진 경험을 활용해 새로운 형태의 일을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그동안 해오던 일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제2의 직업을 스스로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번 《은퇴하고 즐거운 일을 시작했다》를 읽으며 은퇴 후 나만의 즐거운 배움을 고민했던 것처럼, 이번 책을 통해서는 직장이라는 간판을 내려놓은 뒤 내 경험을 어떻게 자산화할지 한 단계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 경험을 하나씩 적어보니
책에서 제안한 내용 가운데 실제로 해본 것은 ‘나만의 평생 직업 자산 목록’을 만들어보는 일이었다.
노트를 펼쳐놓고 35년 동안 내가 잘해왔던 업무 노하우부터 사람들과 소통하며 얻은 경험,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힌 작은 지혜들을 하나씩 적어보았다. 처음에는 이런 경험들이 직장 밖에서도 가치가 있을까 싶었지만, 목록을 만들어가면서 생각보다 많은 것이 쌓여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블로그나 나만의 기록 매체를 통해 경험을 글로 나누는 방법도 생각해 보았다. 은퇴 후에는 지식 나눔이나 봉사, 새로운 것을 배우는 시간을 일정한 루틴으로 만들어보자는 계획도 세웠다.
이 작업을 하고 나니 정년을 바라보는 마음도 조금 달라졌다. 이전에는 직장을 떠나는 순간 내가 가진 역할도 함께 사라질 것처럼 느껴졌다면, 지금은 그동안의 경험을 다른 형태로 옮겨갈 수 있다는 생각이 생겼다. 35년의 경력이 한순간에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글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지식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셈이다.
다만 책의 적극적인 분위기에는 조금 거리를 두고 싶었다. 1인 창업이나 수익 창출, 경제 활동을 강조하는 부분은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자극이 될 수 있지만, 오랫동안 쉼 없이 달려온 60대에게는 또 다른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나에게는 돈을 버는 일만큼 쉬고 배우는 시간도 중요하다. 정년 이후에도 계속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보다는 내 체력과 마음의 속도에 맞춰 일과 휴식을 조절하는 것이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회사의 이름을 내려놓은 뒤에도
이 책을 읽고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정년에 대한 감정이었다. 이전에는 정년을 피할 수 없는 퇴장의 시점처럼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 이후의 시간을 내가 다시 설계할 수 있는 시점으로 바라보게 됐다.
앞으로는 35년 동안 축적한 경험과 온기를 담아 글을 쓰고, 후배들과 소통하면서 소소하게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생활을 만들어보고 싶다. 봉사와 배움도 함께 이어가고 싶다. 아직 제2의 직업을 실제로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는 이전보다 선명해졌다.
물론 ‘평생 현역’이라는 말도 나에게는 조심스럽다. 평생 일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다. 내가 원할 때 배우고, 쓰고, 누군가와 나누고, 필요하면 충분히 쉬는 것까지 포함해야 비로소 내가 선택하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35년 직장 생활은 이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옮겨갈 준비를 하고 있다. 회사가 정하는 정년은 있지만, 그동안 쌓아온 경험의 유효기간까지 회사가 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제는 정년을 두려워하기보다 그 이후에 무엇을 남기고 어떻게 살아갈지를 조금 더 차분하게 생각해보려 한다. 제2의 직업 역시 거창한 사업이나 수익을 내는 일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경험을 필요한 사람과 나누면서 나다운 방식으로 이어가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삶의 다음 시간을 결정하는 것은 정년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오래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