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 많을수록 말보다 경청이 먼저였다 — 『하버드 말하기 수업』을 읽고

오랜 세월 직장에서 쌓아온 수많은 대화와 협상의 경험을 되돌아보며, 설득하고 가르치려는 조급함보다 상대의 말을 한 박자 느리게 끝까지 들어주는 '다정한 경청'이야말로 진정한 어른의 품격이자 소통의 열쇠임을 깨닫게 되었다. 

리웨이원의 『하버드 말하기 수업』을 읽고, 은퇴를 앞둔 직장인의 시선으로 화려한 말하기 기술을 넘어 따뜻한 경청과 절제의 언어를 다짐하는 솔직한 독서 서평입니다.

전자책『하버드 말하기 수업』표지
전자책『하버드 말하기 수업』표지

경험이 많다는 것이 꼭 잘 듣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오랜 세월 일터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며 지내다 보니 말의 힘을 여러 번 경험했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상대의 마음을 얻기도 하고, 뜻하지 않은 오해를 만들기도 했다. 정년과 은퇴라는 전환점을 앞두고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서, 이제는 말을 잘하는 법보다 내 말하는 습관을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으로 리웨이원의 『하버드 말하기 수업』을 펼쳤다.

지난번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으며 성과나 결과보다 지나온 일터의 시간과 태도 그 자체에 자부심을 보내는 법을 배웠다면, 이번에는 『하버드 말하기 수업』을 통해 수십 년간 쌓아온 삶의 경륜을 내세우지 않고 타인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주는 어른의 소통법을 깊이 성찰해보게 되었다.

솔직히 책 제목을 처음 봤을 때는 조금 다른 기대를 했다. 하버드라는 이름 때문에 상대를 설득하거나 대화의 주도권을 잡는 비즈니스 기술, 혹은 말을 유창하게 하는 방법을 다룬 책일 것이라 짐작했다. 긴 직장생활을 하며 나름대로 수많은 대화와 협상을 경험했으니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가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읽으면서 오래 머물게 된 대목은 의외로 화려한 말하기 기술이 아니었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자신의 주장을 능숙하게 펼치는 데 앞서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고 귀 기울이는 데서 시작된다는 내용이었다. 대화의 주도권 역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편안하게 하고 충분히 말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사람에게 있을 수 있다는 관점이었다.

이 부분에서 자연스럽게 직장생활의 여러 장면이 떠올랐다. 경험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내가 알고 있는 답이 상대보다 빠르다고 생각하게 된다. 후배나 동료가 이야기를 꺼내면 끝까지 듣기도 전에 내가 겪었던 비슷한 사례를 떠올리고, 조언한다는 명목으로 내 판단을 설명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반대로 내 뜻과 다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조급한 마음으로 상대의 말을 중간에 끊거나 내 주장을 밀어붙였던 경우에는 대화가 오히려 딱딱해졌다. 내가 옳다고 믿었던 말이 상대에게는 부담으로 전달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오히려 한 템포 쉬고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었던 순간들이다. 말을 끊지 않고 가만히 듣다 보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나왔고, 때로는 그것이 문제를 풀어가는 더 좋은 답이 되기도 했다.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내가 정답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상대의 말을 충분히 들을 때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책에서 말하는 ‘공감적 경청’과 ‘한 박자 느린 대화’를 일상과 업무에서 직접 적용해 보았다. 상대가 말할 때 내 판단을 앞세워 끼어들기보다 끝까지 들어보려고 했고, 내 의견을 말할 때도 “내 생각은 이렇다”라고 밀어붙이기보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이런 시선은 어떨까요?”라는 식으로 표현을 바꾸어 보았다.

말의 기술보다 말에 담긴 태도가 오래 남는다

적용해 보니 대화 자체가 조금 달라졌다. 무엇보다 내 안의 조급함이 줄었다. 내가 반드시 마지막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한 걸음 물러서자 상대방도 한결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느꼈다. 후배들과 동료들이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경우도 있었고, 불필요한 감정 소모 없이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물론 책의 모든 주장에 그대로 동의한 것은 아니다. 책에서 강조하는 합리적이고 명확한 의사표현이나 전략적인 대화 방식은 분명 유용하지만, 오랫동안 서열과 완곡한 표현, 정서적 유대감을 중요하게 여겨온 우리 조직문화에서는 때때로 다소 직설적이거나 계산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사람 사이의 대화에는 말의 내용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맥락과 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명확하게 말하는 것과 따뜻하게 헤아리는 것이 서로 반대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 정확한 의사표현도 필요하지만, 그 말이 상대에게 어떻게 닿을지를 살피는 마음 역시 놓쳐서는 안 된다.

말은 마음의 거울이다

이 책을 읽고 말하기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세월을 통해 쌓은 경험과 지혜도 그것을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달될 수 있다. 많이 아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많이 알고 있어도 상대의 말을 먼저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은퇴 후의 삶에서도 이 연습을 이어가고 싶다. 수십 년간 쌓아온 경험을 앞세워 누군가에게 답을 가르쳐주기보다 후배와 이웃의 이야기를 먼저 듣고, 필요할 때 조심스럽게 내 생각을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말은 마음의 거울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의 깊이에 따뜻한 경청과 절제된 언어를 조금 더한다면, 앞으로의 말은 이전보다 조금 느리고 다정해질 수 있지 않을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제는 말을 꺼내기 전에 한 번 더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