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앞두고 읽은 《데미안》: 35년 직장생활을 돌아보며
환갑을 넘기고 다시 펼친 《데미안》은 청년 시절에 읽었던 책과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예전에는 꼭 읽어야 하는 필수 도서를 숙제를 해결하 읽었기 때문에 성장과 방황에 관한 이야기로 읽었다.
그런데 35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마무리하고 은퇴를 앞둔 사람으로서 과제를 해결한다는 느낌을 가지지 않고 부담없이 편하게 읽게 되었다. 읽다보니 ‘회사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뒤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게 됐다.
이번에 《데미안》을 다시 읽으며 가장 오래 생각한 것은 ‘알’이었다. 내게 그 알은 오랫동안 몸담았던 직장이었다. 퇴직을 앞둔 지금, 나는 그 울타리를 벗어나는 일이 단순히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나를 다시 바라보는 과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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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책 헤르만 헤세의《데미안》표지 |
청년 시절 읽었던 고전 가운데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 몇 권 있었다. 《데미안》도 그중 하나였다. 당시에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청소년의 방황과 성장에 관한 소설 정도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환갑을 넘긴 지금 다시 펼치기 전까지도 ‘이 나이에 읽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데미안》을 펼치게 된 계기가 있었다. 퇴직을 앞두고 마음이 뒤숭숭하기도 하고 오히려 퇴직 관련 책을 읽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머리를 식힌다는 느낌으로 내 고민과 상관이 없는 책을 읽어보자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퇴직 후 경제 생활을 어떻게 유지해야 할지가 참 고민이었다. 하지만 머리만 아프기만 해서 기분 전환용의 책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때 전자책을 1년간 무료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여러 책을 골라보다가 이 표지를 보자마자 선택해서 읽게 되었다.
지난번 《학폭위 열리는 날》을 읽으며 타인의 행동 뒤에 숨은 마음을 헤아리는 경청을 생각했다면, 이번에는 《데미안》을 통해 시선을 다른 사람에게서 나 자신에게 돌려보게 되었다.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작 나는 내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 얼마나 자주 물어봤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35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고 은퇴를 앞둔 시점에서 읽으니 전혀 다른 질문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동안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맡은 책임을 다하고, 해야 할 일을 해내며 살아왔다. 나름 정말 최선을 다했다. 직장에서는 내가 해야 할 일이 비교적 분명했다. 출근해서 맡은 일을 처리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책임져야 할 일을 책임지면 하루가 지나갔다.
그런데 퇴직 이후를 생각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오히려 그다음 질문이 어려워졌다. 어느 날 퇴직 이후의 일정을 생각하다가 문득 ‘매일 출근할 곳이 없어지면 나는 하루를 어떻게 보내게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의 나에게는 가장 큰 고민이기도 하다.
“회사라는 울타리와 신분표를 떼어내고 나면 나는 누구인가?”
다시 들여다본 내면의 목소리
싱클레어의 고뇌를 따라가면서 내가 가장 오래 머문 부분은 ‘남들이 정해준 삶’과 ‘내 안에서 솟아나는 삶’ 사이의 갈등이었다. 청년 시절에는 이 부분을 막연히 성장 과정에서 겪는 고민으로 읽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읽혔다. 직장생활을 오래 한 사람에게도 ‘나는 정말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내게 이것은 거창한 자아 탐구라기보다 아주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왔다. 35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는 해야 할 일을 해내는 데에는 익숙해져 있었다. 맡은 일이 생기면 처리해야 했고, 책임져야 할 일이 있으면 먼저 책임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자주 하지 않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컴퓨터 언어 분야를 더 배우고 싶었다. 당시에는 일이 먼저라고 생각했고, 시간이 생기면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할 기회 자체를 미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니 내가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생각할 시간을 계속 뒤로 미뤄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오히려 지금처럼 삶의 한 단계가 끝나가는 시점에 더 진지하게 물어야 할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알은 세계이다”라는 문장 앞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역시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라는 구절이었다. 내게 이 알은 자연스럽게 ‘직장’으로 읽혔다.
직장은 오랫동안 나를 보호해준 세계였다. 그 안에서는 내가 해야 할 일이 분명했고,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직함 역시 나를 설명하는 하나의 이름표가 되어주었다. 그래서 퇴직을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자유로워진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동안 나를 설명해주던 이름표 하나를 내려놓는다는 느낌도 있었다. 직장에서 000 부장으로 불리는 것이 오랫동안 익숙했다. 사람을 만날 때도 자연스럽게 000 부장으로 나를 설명하곤 했다. 그래서 퇴직 후에는 그런 설명 없이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생각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은퇴를 단순히 직장에서 물러나는 일로만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35년 동안 쌓은 경험까지 모두 내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해온 일을 돌아보고, 그 경험 가운데 앞으로도 가져가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과정에 가깝다고 느낀다.
물론 《데미안》의 신비주의적인 요소나 싱클레어가 겪는 극단적인 내적 고뇌는 내 현실과 거리가 있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조직에서 책임과 질서를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온 내게 내면의 투쟁만으로 삶을 설명하는 방식은 다소 모호했다. 현실에서는 나 자신을 찾는 일 못지않게 가족과 사회에 대한 책임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아침의 차 한 잔, 그리고 다가오는 은퇴 이후의 삶
그래도 이번에는 책을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 가지를 실제 생활에 옮겨보았다. 타인의 시선에서 잠시 벗어나 내 마음과 대화하는 시간을 일상에 넣어보기로 했다.
나는 요즘 아침 6시 반에 거실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면서 그날 떠오르는 생각을 수첩에 몇 줄씩 적어본다. 길게 쓰려고 하지는 않는다. 어떤 날은 한두 문장만 적고 끝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많이 쓰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춰 내 생각을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은퇴를 바라보는 내 생각도 조금씩 달라졌다. 예전에는 퇴직 이후 무엇을 해야 할지를 먼저 생각했다면, 요즘은 내가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더 배우고 싶은지를 먼저 생각해보게 된다. 아직 은퇴 이후의 구체적인 계획이 모두 정해진 것은 아니다. 다만 막연하게 불안해하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살펴보자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 은퇴한 뒤에도 이런 질문을 계속해보고 싶다. 남들이 보기에 괜찮은 선택인가를 먼저 생각하기보다, 내가 실제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고 싶다.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직장생활을 부정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35년 가까이 성실하게 일해온 시간에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다.
그동안 배운 것과 경험한 것들이 있기 때문에, 이제는 그것들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활용해보고 싶다. 지금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중 하나는 AI다. 최근에는 AI를 활용해서 그림도 그려보고, 노래도 만들어봤다. 아직 이것을 직업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은퇴 후에는 AI를 활용한 다양한 경험을 조금 더 깊이 해보고 싶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시간이야말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일 것이다. 나에게 알을 깨는 일은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35년 동안 살아온 경험을 가지고, 그 경험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해보는 일에 더 가깝다.
‘내 속에서 스스로 솟아나오려는 것, 나는 오직 그것만을 살아가려 했다.’
다시 읽은 《데미안》은 내게 젊은 날의 방황을 떠올리게 한 책이라기보다, 은퇴를 앞둔 지금의 나에게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지 묻게 한 책으로 남았다.
아직 답을 모두 찾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제부터 하나씩 찾아가야 할 것 같다. 다만 예전처럼 ‘퇴직 후에는 무엇을 하지?’라는 질문만 하기보다 ‘나는 앞으로 무엇을 배우고 싶은가?’, ‘내가 가진 경험을 어떻게 활용하고 싶은가?’라는 질문도 함께 해보려고 한다.
《데미안》을 다시 읽은 뒤 내가 시작한 것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다. 아침에 차 한 잔을 마시며 잠시 내 생각을 적어보는 일, 책을 읽다가 마음에 남는 문장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일, 그리고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묻는 일이다. 아마 나에게 필요한 ‘알을 깨는 연습’도 이런 작은 것에서 시작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